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은 산업 구조 고도화에 따라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한라그룹은 인재 육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사명을 바탕으로 학교법인 배달학원 설립을 추진하였다.
1990년 3월 31일 정인영 박사가 전문대학 설립계획을 신청하고, 9월 24일 원주공업전문대학 설립계획 승인, 10월 17일에는 학교법인 배달학원이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이듬해 1월 24일 강원도 건설국에 캠퍼스 조성을 위한 공공시설 입지를 신청하고, 5월 15일 최종 허가를 받음으로써 대학 설립의 초석을 다졌다.
캠퍼스 조성 및 본관동 건축 공사는 1992년 8월 22일에 착공하여, 같은 해 12월 1일에 토목공사를 마쳤다. 그 후 27개월에 걸친 공사 끝에 마침내 1994년 11월 23일 교사 준공검사를 완료하였다. 1994년 5월 27일 ‘한라공업전문대학’으로 교명 변경 승인되었고, 7월 30일 설립인가 신청을 거쳐 11월 17일 승인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개교 준비에 나섰다.
1995년 2월 3일에는 부지 495,868㎡, 건축 연면적 49,587㎡ 규모의 한라공업전문대학 교사 준공식을 개최하였다. 정인영 이사장은 준공식에서 “산학협동체제로 기술인력을 양성하여 국가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히며, 향후 4년제 공과대학으로의 전환을 예고하였다. 이러한 비전은 이후 한라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개교 준비 과정에서 설립자와 교직원들은 신입생 모집을 위하여 전국 고등학교를 일일이 방문하며 우수 인재 확보에 전력을 다했다. 그 결과, 신입생 모집 경쟁률은 평균 7.8:1을 기록하였다. 이 같은 결과는 설립 초기부터 이미 명문 전문대학으로서의 위상을 갖추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입학정원은 공업계열로만 기계과 120명, 자동차과 80명, 조선과 80명, 전기과 120명, 전자과 120명, 토목과 80명, 건축과 120명으로 합계 720명의 입학정원 승인을 받았으며, 정원 외 전형을 포함하여 총 792명의 신입생을 선발하였다.
12년에 걸친 준비 끝에 한라공업전문대학은 1995년 3월 1일 초대 민수홍 학장을 포함한 전임교수 22명을 임용하고, 3월 6일 신입생을 맞이하며 역사적인 첫 입학식을 거행하였다. 입학식에서 민수홍 학장은 “오늘의 입학은 12년 노력의 성과가 아닌 더 높은 목적 달성을 위한 더 큰 시련의 시작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여 5년 앞으로 다가온 21세기의 주역이 되어달라”는 당부를 하였다.
개교 이듬해에는 주간에 전산정보처리과, 야간에 기계과, 자동차과, 전자과를 신설하여 약 80명의 정원을 증원해 총 입학정원 1,040명을 모집하였다. 또한 농·어촌 학생 특별전형을 추가로 실시하였다. 이로써 중규모 전문대학의 위상을 확립함은 물론 더욱 우수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한라공업전문대학 준공식(1995. 2. 3)
한라공업전문대학 개교 및 입학식(1995. 3. 6)
한라공업전문대학 학교 부지 전경 1992
대학 본관 골조공사 전경 1993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한라공업전문대학 전경 1994
개교 후 3년 후의 전경 1997
1) 정원 외 포함 792명
* 신설학과
* 신설학과
중규모 전문대학의 위상을 확립한 한라공업전문대학은 학문적 성과뿐만 아니라, 대학의 정체성을 형상화한 상징 정립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중심에는 해발 280m의 작은 봉우리가 있었다. 원래 자주봉이라 불리던 이 봉우리는 1919년 3·1운동이 벌어졌던 역사적 유적지로, 지역사회의 독립 정신과 민족정기를 상징하는 장소이다. 이곳에 대학을 세우면 졸업생들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정기를 가진 지형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 곳이었다. 이에 개교 후 이은학 학생과장은 향토사학자인 박찬언 선생(당시 육민관중 교사)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 자주봉을 ‘문필봉’으로 개명하고 한라공업전문대학의 진산으로 삼았다.
이러한 의미를 바탕으로 학교 측은 1995년부터 매년 산제를 지내는 전통을 세웠다. 이는 ‘문필봉제전’이라는 이름으로 열렸으며, 학생들의 자긍심과 소속감을 고취시키는 상징적 행사로 자리잡았다. 이후 문필대동제·문필체전 등 캠퍼스 주요 행사에 ‘문필’이란 단어가 들어가게 된 것 또한 이러한 상징성을 계승한 결과였다.
한편, 교가 제작도 상징성을 높여 독특한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한라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가사 공모를 진행해 우수작 5건을 선정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이익재 선생이 작곡을 하고, 학생처장 이은학 교수와 우수작 당선자 김동진교수가 협업하여 최종 가사를 완성하였다.
제1회 문필봉제전 중 헌제(1995. 4)
1995년 3월 개교를 앞두고 한라그룹 임직원 및 가족을 대상으로 공모한 한라공업전문대학 교가(가사부문) 공모와 교가 악보
대학 문화 확충을 위한 다양한 행보도 이어졌다. 1995년 5월 12일, 아직 학생자치단체가 본격적으로 조직되기 않았지만 교직원 중심으로 전교생 첫 체육대회를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이듬해 체육대회부터는 ‘문필체전’이라는 이름으로 정례화되었다. 같은 해 9월 18일부터 나흘간 이어진 ‘제1회 문필대동제’는 신설된 총학생회 주관으로 열렸다. 가요제, 스포츠 대회, 교양 강좌, 작품 전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동아리를 결성하고 전공별 학술 활동을 이어가며 대학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자치문화는 자율과 창의라는 교육이념을 실현하는 장으로 기능하였다.정보 전달과 여론 형성의 중심 축으로서 언론 기관의 중요성을 인식한 학교는 개교 첫해부터 한라방송국과 학보사를 개소하였다. 1995년 6월 2일 ‘한라방송국(HITBS)’을 개국하고, 이어 12일에는 ‘한라공대 학보사’가 문을 열었다. 10월 5일 창간호를 발행한 학보사는 민수홍 학장의 ‘웅비(雄飛)의 나래를 펴고’ 창간사를 시작으로 다양한 학내외 이슈를 다루며, 단기간에 대학 대표 언론매체로 성장하였다. 방송국과 학보사는 단순한 소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문화예술 공연 유치, 기자단 및 방송부원 양성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학생 활동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1995년 4월 1일에는 도서관을 개관하였다. 남관(현 창조관) 2층에 면적 735㎡, 장서 약 4,000여 권, 간행물 6,850여 종, 열람석 240석 규모였다. 이후 도서관 이용 학생이 많아지면서 1996년 8월 26일 본관 8층과 9층으로 이전하였다. 이전하여 새롭게 개관한 도서관 8층은 대출실, 전산실, 로비로 구성하였으며, 복층으로 된 9층은 제1열람실, 제2열람실, 단체열람실, 교직원 상담실로 구성하였다. 장서와 열람석도 대폭 확충되어 학생들의 학문 탐색과 자율학습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이는 이후 정보화 시대에 발맞춘 교육 환경 구축의 전환점이 되었다.
제1회 문필대동제(1995. 9. 18~21)
도서관 이전 개소식(1996. 8. 26)
한라공업전문대학은 실험과 실습 중심 교육 강화를 위하여 연면적 6,612㎡ 규모의 실습동을 마련하고, 1996년 4월 22일, 정인영 이사장과 한라그룹 주요 인사들을 초대하여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실습동에는 구조 및 재료시험실, 유체·수리 실험실, 공작기계실 등 총 17개의 실험·실습실이 마련되었다. 민수홍 총장은 준공식에서 “고급 기술인력 양성에는 반복적인 실습과 첨단 장비 활용이 필수”라며 대학의 연구역량 강화를 강조하였다. 실습동은 후일 ‘산학협력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대학의 산학협력 거점이 되었다.
한라공업전문대학은 전문기술인 양성을 위해 1995학년도부터 현장실습을 도입하였다. 특히 한라그룹의 지원으로 계열사 및 협력업체에서 4주 단위로 하계 및 동계에 실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는 당시 타 대학에서는 보기 힘든 이례적인 사례였다. 1996학년도부터는 참여 업체와 학과가 확대되어 수료학생 수도 크게 증가하였다.
실습동 준공식(1996. 4. 22)
1996년 2월 공표된 ‘대학설립 준칙주의’에 따라 2년제 한라공업전문대학은 4년제 교육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같은 해 9월 12일 한라공과대학교 설립인가를 신청하였다. 12월 11일 교육부 승인을 받고 3개 학부(기계공학부, 전기공학부, 건설공학부) 내 8개 학과(기계자동차과, 기계공학과, 조선공학과, 전기공학과,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과, 건축공학과, 토목공학과)로 구성된 4년제 한라공과대학교가 탄생하였다.
한라공과대학교는 1997년 3월 2일 한라공업전문대학의 초대 학장을 역임한 민수홍 학장을 초대 총장으로 선임하고, 3일에는 공식 개교와 함께 첫 입학식을 거행하며 244명의 신입생을 맞이하였다. 민수홍 총장은 입학식에서 신입생들에게 “장차 지도자로서 필요한 교양과 덕성을 폭넓게 연마하고, 협동과 경쟁 원리에 입각한 전문인으로서 사회생활 능력 함양에 힘써 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하였다.
1997년 11월, 교육부로부터 입학정원 증원 및 경상학부 신설 인가를 받음으로써 종합대학으로서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신설된 경상학부는 경제학, 경영정보학, 무역통상학, 금융보험학, 물류유통학 등 5개 전공으로 구성하여 학문의 다양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이에 따라 입학정원은 630명으로 대폭 늘어났으며, 대학의 위상 역시 지역을 대표하는 종합대학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장과 도약을 발판으로 1998년 5월 1일, ‘한라공과대학교’는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한라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종합대학으로서의 정체성과 포부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
한라공과대학교 승격 자축연(1996. 12. 11)
한라공과대학교 승격을 알리는 현수막과 학교 전경